전라북도 이리시 창인동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에서 오후 9시 15분에 화약 열차가 폭발하면서 59명이 숨지고 1343명이 다쳤으며 1674세대 7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고 이틀 전 다이너마이트, 초산 암모니아 등을 싣고 인천에서 출발한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 열차가 광주로 향하기 위해 이리역에 도착했다.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서 대기 시키지 않고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리역 관계자들이 `급행료'라는 명목의 뇌물을 요구해 40여 시간 대기하게 된다. 한국화약주식회사 호송 직원 신무일씨는 홧김에 음주를 한 뒤 열차 안 침낭에서 양초를 켠 채 잠이 들었고 이것이 화약에 옮겨 붙으면서 폭발사고로 이어졌다. 호송 직원 신무일씨, 이리역 철도요원 및 검수요원 등이 화재를 확인했지만 불을 끄지 못한 채 도망가 피해 규모가 더 커졌다. 이리역 구내에는 깊이 15m, 지름 30m의 큰 웅덩이가 남았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신무일씨는 징역 10년형, 급행료를 요구했던 직원은 징역 8개월을 받았다. 화약 열차의 주인이었던 한국화약주식회사(현재 한화)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90억원을 배상금이 아닌 보상금으로 내놓았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남도민 및 광주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5월 18일 전남대 앞에 모인 학생들은 광주역 앞에서 시위에 벌였고,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까지 무차별 폭행했다. 19일 시민을 향한 최초의 발포가 있었고, 21일 시민군과 계엄군의 총격전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27일 새벽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대대적인 무력진압이 진행됐고 도청에 있던 시민군이 새벽 5시 22분 전원 연행됐다. 10일에 걸친 광주 민주화 운동 결과 167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행방불명자, 부상자가 발생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이 결정됐고, 1997년 4월 전두환·노태우는 각각 무기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됐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씨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해병(수질오염이나 대기 오염 따위의 공해 때문에 생기는 질병)인 온산병은 비철 금속 공업 단지로 지정한 온산 지역에서 발생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중금속에 의한 오염 피해로 허리, 다리, 팔, 어깨 따위의 전신 신경통과 전신 마비의 증상을 보인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일대에는 74년도에 지정된 온산공업단지가 있다. 그 후 80년대 초 공단주위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괴질에 걸려, 신경통 전신 마비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85년 1월 이 지역 주민 500여 명이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를 보인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같은 해 정부가 공해 피해를 인정하고 약 10000명 정도의 거주자들을 2km 떨어진 남창지구 등으로 이주시켰다.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사할린 남서쪽 모네론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한국인 승객 81명을 포함해 비행기 안에 있던 269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은 참사 직후 민항기 격추 사실을 부정하다가 5일 만에 인정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기가 항행등을 켜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항로를 바꾸라는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1992년 옐친 대통령이 방한해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블랙박스를 전달했지만, 핵심기록인 비행기록이 없었고 음성기록 테이프도 복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카고 협약이 ‘민간 항공기 격추는 그 이유가 영공침범이나 항로이탈이라도 격추 자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격추시킨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로 개정됐다.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벵골만 상공에서 랑군 항공통제소와 마지막 교신을 한 뒤 사라졌다. 당시 미얀마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폭발 사실이 확인됐다. 사고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노동자 88명과 주이라크 총영사 부부 2명, 내국인 개인 탑승자 3명, 외국인 승객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했었지만 전원사망했다. 이틀 뒤 사건 용의자 김승일과 김현희가 바레인에서 검거됐지만, 김승일은 검거 과정 중 자결했고 김현희는 12월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됐다. 88년 1월 15일 안기부 수사 발표 현장에서 김현희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 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90년 대법원은 김현희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판결 보름 만에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지난해 유가족들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당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1987년 12월 중학교 졸업을 앞둔 문송면은 수은 온도계 공장인 협성계공에 입사한다. 입사 한 달 만에 그는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 1988년 2월 병가를 내고 귀향한다. 발작 등의 이상증세는 심해졌고 3월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중독을 판정받는다. 회사는 17세였던 그에게 맹동성 물질인 수은을 다루는 업무를 맡겼다. 문송면의 가족들은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노동부는 3번 거절했고 끈질긴 싸움 끝에 산재 인정을 받는다. 문송면은 입원 115일만에 1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 협의회’가 구성됐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803편이 공항에서 추락했다. 착륙하기 위해 접근하던 중 동쪽 활주로 끝 3.6km 전방에 있는 지상 장애물과 충돌한 뒤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99명 중 74명, 그리고 지상에 있던 6명 등 모두 80명이 숨졌다. 당시 조종사는 기착지인 제다로부터 트리폴리 공항의 ILS(Instrument Landing System, 비행기가 안전하게 공항에 착륙하도록 도와주는 계기착륙장치)가 고장난 상태라고 이미 들은 상태였고 가시거리도 좋지 않아 다른 항공기들은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라토로 회항해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고기 기장 김호준씨 등 3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김씨에게 금고 2년의 실형을, 부기장 최재홍 씨 등 2명에게 금고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했다.
경북 구미시 구포동 두산전자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설비로 연결된 파이프가 파열됐다. 다음 날까지 30톤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두산전자는 1990년 10월 21일부터 1991년 3월 20일까지 무려 5개월 동안 일일 평균 1.7 톤의 페놀 폐수를 방류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구시와 대구지방환경관리청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월 1회 이상 하기로 되어있는 페놀 검사 의무 규정조차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단체는 두산과 환경처 등을 직무유기 및 수질환경보전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고 두산그룹 불매 운동, 낙동강 수질오염 실패 파악 결과 보고서 발표 등을 진행했다. 대구지방 환경청 공무원 7명과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조치됐다. 그러나 당시 환경처는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두산전자의 조업 재개를 허용했고 보름 만에 페놀 탱크 송출 파이프 이음새가 파열되면서 페놀 원액 2톤이 또 유출되는 사고가 재발했다. 결국 국회에서 열린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당시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물러났으며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다. 사건 뒤 유해물질을 고의로 배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환경개선비용부담금법’등이 제정되고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발족했지만 1994년 1월 낙동강 수원지에서 다량의 벤젠 톨루엔이 검출되는 오염사건이 재연됐다.
오후 5시 20분 부산행 무궁화호 제117호 열차가 구포역 인근에서 선로 노반 침하로 전복해 78명이 숨졌고 163명이 다쳤다. 열차는 물금역을 지나 구포역으로 향하던 중 사고 지점 약 100m 전방에서 선로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했으나 탈선했다. 사고원인은 열차 운행선의 노반 밑을 관통하는 지하 전력구를 설치하기 위해 시공사가 임의로 발파작업을 함으로써 지반 약화를 초래하였기 때문이었다. 사고 당일도 한전 쪽은 철도청과 협의도 없이 사고현장에서 15m 떨어져 있는 덕천네거리 일대 지하에서 전선관 매설을 위한 굴착작업을 벌였으며 특히 사고 인근은 지반이 약해 발파진동으로 부근 주택이 피해를 입는 등 사고가 예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이 지역의 공사를 삼성종합건설에 발주했으나 실제 공사는 삼성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한진건설이 해왔다. 정부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공업체인 삼성종합건설에 법정최고기간인 영업정지 6개월에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한국전력 지중선 사업처 김봉업 처장과 삼성종합건설 남성우 사장 등 11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협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남 사장은 석달 뒤 보석보증금 5000만원을 내고 풀려나온 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1심에서 금고 1년형을 받은 김 처장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뒤 2심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철도 경계선으로부터 30m 이내의 범위 안에서 건축 또는 굴착공사 등을 하려면 소관 부처인 교통부(현재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장관은 열차의 안전운행 및 철도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철도법(현행 철도안전법)이 개정되었으며 위반 행위에 대한 벌칙도 강화되었다.
오후 3시 50분께 서울발 목포행 아시아나항공 733편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마천마을 뒤 복개산에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인원 110명 중 66명이 숨지고 44명이 다쳤다. 항공기는 목포 상공의 기상 상태가 나빠 3차례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해 추락했다. 교통부 사고대책본부는 조사를 통해 조종사의 결정적인 판단 착오, 부기장의 미숙함, 광주 및 목포관제탑의 적극적인 관제 미흡 등을 사고원인으로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추락 참사가 항공사간 과당경쟁에 따른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항공사 육성지침을 전면 재검토하기도 했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를 떠나 격포항으로 향하던 110톤급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해 탑승객 362명 중 292명이 숨졌다. 출항 당시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기상 특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천후였다. 선장은 출항 결정을 내리고 출발 예정 시간인 9시에서 40분이 지난 9시 40분에 출항했다. 110톤급 여객선인 서해 훼리호의 정원은 221명이었지만 사고 당시 승객 355명, 선원 7명 등 362명이 탑승해 정원보다 141명을 초과했다. 화물도 규정을 어겨가며 실은 상태였다. 기상악화로 여객선이 위도로 회항하기 위해 뱃머리를 180도 회전하던 중 삼각파도(방향이 서로 다른 두 파도가 만나 형성되는 파도)에 강타당해 10초 남짓한 짧은 순간에 침몰했다. 구명보트는 단 1대만 작동했고 구명조끼를 제대로 입은 사람들도 적었다. 그나마 갑판과 1층에 있던 사람들은 탈출했지만, 지하에 있던 탑승객들은 탈출하지 못했다. 사고가 나자 사고 현장 근처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5~6척이 곧바로 사고 선박에 접근해 구명보트 등으로 40여 명의 조난승객을 구출했다. 그러나 군경의 구조선이 사고 발생 뒤 1시간이나 지나서 늑장 출동한 데다 사고 해역 풍랑이 심해 즉각적인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배는 8일 만에 인양됐고 11월 2일 마지막 실종자의 주검까지 292명 모두 인양됐다. 전주지검은 직접적인 사고원인이 과승 및 과적, 운항 부주의, 부족한 방수구 등이었다며 이 사고와 관련해 선주와 해운항만청 직원 등 6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지방해운항만청 관리계장이 최고위급 책임자로 구속됐고 그나마 그도 석 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오전 7시 38분경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교향 상판을 떠받치는 철제구조물) 48m가 붕괴됐다.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했고 그 가운데 32명이 숨졌고 17명이 다쳤다. 트러스의 연결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10mm 이상이 돼야하는 용접두께가 8mm 밖에 되지 않았다.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과적차량도 사고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붕괴 전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총중량 32.1톤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들이 자주 통과했다. 특히 붕괴 일 년 전 서울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폭증했으나 서울시에서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방치했다. 관리를 맡고 있던 서울시는 부식된 철제구조물에 대한 근본적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숨겼다. 사고 당일 서울시장이었던 이원종 사장이 경질됐다. 이 사건으로 공공시설에 대해 일제히 안전점검이 진행됐고 당산철교 등 부실 징후가 드러난 시설물은 사용을 중지하고 보강공사를 실시했다. 성수대교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무너진 성수대교의 복구를 맡겠다고 서울시에 제의했지만 거절당했고 최원석 회장은 그해 말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95년 4월 26일부터 성수대교를 헐어내고 97년 7월 3일 새로운 성수대교 위로 차량통행이 재개됐다. 이원종 서울시장과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서울시 도로국장과 동아건설 상무가 구속되는데서 수사가 종결됐다. 이들 역시 6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상인네거리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차량 150여 대, 건물 80여 채가 파손됐다. 폭발 후 50m에 달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근방 400m 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사고 현장이 학교 근처인 데다 등교 시간이어서 학생 사상자가 많았다. 사망자 중 42명이 영남중학교 학생이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대구백화점 신축공사 하청업체인 표준개발이 소방도로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천공작업을 벌이다 1.7m 깊이의 도시가스 중압관을 파손시켰고 유출된 가스가 빗물하수관을 통해 70여m 떨어진 지하철 공사장으로 흘러 들어가 폭발한 것으로 발표했다.
오후 5시 52분께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붕괴되어 508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쳤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 2개동 중 A동은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 사건 당일 오전에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지만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 천 여명 이상의 고객들과 직원들이 해당 건물에 있었다. 오후 5시 52분께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건물은 20여 초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대규모 참사에 구조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구조 작업도, 후속대책도, 긴급사태에 대비한 매뉴얼도 없었다. 정부 기관들이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체계적인 지휘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수습작업도 진행되지 않아 잔해를 갖다버린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뒤져서 142구의 주검을 추가로 수습하는 일도 발생했다. 사건 뒤 조사를 통해 설계 시에 대단지 상가로 설계되었던 것이 정밀한 구조 진단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되어 1989년 완공되었고 그 후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된 것이 밝혀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물 안전평가가 실시됐고 119중앙구조대가 서울, 부산, 광주에 설치되었다. 1996년 8월 대법원은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징역 7년 6개월을 확정했고 삼풍백화점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을 승인해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300만 원을 확정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비는 사고 현장이 아닌 4km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마련됐다.
대한민국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 괌 아가나 국제공항에서 착륙에 실패해 승객 237명, 승무원 17명 중 228명이 숨졌고 26명이 다쳤다. 새벽인데다 강한 소나기와 안개까지 겹친 극도의 악천후 속에서 박용철 기장은 아가냐 공항의 착륙유도장치 가운데 하나인 활공각도 지시장치(글라이드 슬로프)마저 작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육안에 의존해 착륙을 시도했다. 기체의 앞머리가 땅쪽으로 고꾸라지는 듯하면서 다시 튀어올랐으며 동체 밑부분이 땅에 부딪치며 동체가 언덕으로 가로질러 미끄러졌다. 그 뒤 곧 비행기 뒤쪽이 폭발과 함께 동강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2년 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최종 조사결과보고서는 내어 "사고기 조종사가 비행기의 고도를 자동지시하는 공항 내 활공각지시기(글라이드 슬로프)의 고장사실을 미리 통보받고도 이 장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등 조종사의 과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항공청이 괌 공항의 최저안전고도경보장치가 고장났다는 이유로 잘동을 중단시키는 등 관제 미비와 관제장치 고장도 사고를 발생하게 한 기여과실이었다고 분석했다.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에서 오전 0시 30분께 화재가 발생해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수련원에는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모두 544명이 있었다. 불이 시작된 C동 301호에는 유치원생 18명이 인솔교사 없이 자던 중 사고를 당해 모두 숨졌다. 또한 수련원 관계자들은 화재 발생 확인 뒤 자체적으로 불을 끄려다 수습하지 못해 1시간이 지나 119에 신고해 골든 타임을 놓쳤다. 경찰 조사과정 중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수련원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만든 임시건물로 청소년 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많음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구조물이었다.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고 화재 알림 비상벨도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4개월전 실시한 소방점검에서는 소방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명시돼있었다. 씨랜드는 무허가로 운영해오다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화성군 건축물대장에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조로 지어진 건축물인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 참사 조사과정 중 공무원 비리도 밝혀졌다. 화성군청 고위 공무원들과 업자 간의 유착관계가 근본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씨랜드 쪽이 수련원 운영허가를 신청했을 때 사회복지과는 이를 반려했지만 윗선의 압박에 의해 허가를 내줬다. 특히 김일수 전 화성군수와 씨랜드 업주 박재천씨의 결탁 의혹이 밝혀졌다. 최고 책임자이면서 여러 업체에서 1억여 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김일수 전 화성군수 무혐의로 풀려났다.
인천 인현동 4층짜리 상가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난 불이 불법 영업 중이던 2층 호프집까지 번지면서 57명이 숨지고 78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52명이 중 ·고교생이었다. 2층 호프집은 무허가 영업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돼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고도 불법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호프집에 있던 학생들은 다른 출구를 찾아 헤매다 출입구 반대쪽 부엌과 화장실 근처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창문도 두꺼운 통유리로 되어있어 유리를 깨고 밖으로 뛰어내릴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상구도 없었고 출입구도 닫힌 상황이었다. 호프집 실소유주가 경찰과 구청 등 관계 공무원들에게 금품을 상납하며 지속해서 결탁해 온 것도 드러났다. 참사 뒤 정부는 당정회의를 열어 대형 화재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벽과 천장만 불연재 사용이 의무화돼있는 다중 이용시설의 계단과 복도도 반드시 불연재나 준불연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오전 9시 15분께 군산시 대명동 성매매업소 건물 2층에서 불이 나 5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화재 당시 이 건물에는 2층에 숨진 5명 등 모두 6명이 자고 있었으며 3층에 있던 종업원은 건물 앞 사다리차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사망자들은 합판 등으로 칸막이 된 방 내부에서 불이 급속도로 번지는 가운데 1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통로를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특히 2층에는 평소 종업원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방범창이 설치돼 있어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그로부터 2년 뒤 2002년 1월 29일 오전 11시 10분께 군산시 개복동 윤락가 내 슬라브 2층 유흥주점에서 불이 난 뒤 옆 건물 유흥주점으로 옮겨붙어 업주 김아무개씨와 여종업원 등 모두 14명이 질식사했다. 업소 여성들이 업주에 의해 감시와 폭행 및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생활을 해왔음이 알려졌다. 이 두 사건으로 성매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폭력으로서의 인권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 2004년 3월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대구시내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192명이 숨졌고 148명이 다쳤다. 오전 10시께 김대한이 하행선 1079호 전동차에서 인화물질이 든 병을 꺼내 불을 붙인 뒤 객실에 던져 화재가 발생해 순식간에 전동차의 6개 객차에 불이 번졌다. 반대편에서 진입 중이던 상행선 1080호 전동차 6량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1079 열차는 정차 중이어서 승객들이 대부분 빠져나갔지만 1080 열차는 기관사와 지하철 사령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동안 불이 크게 번져 대부분의 사망자가 이 열차에서 발생했다. 불은 상·하행 전동차 12량을 모두 태웠고 오후 1시 30분께 진화됐다. 인명피해가 컸던 것은 전동차의 불량 내장재 사용, 직무태만 및 훈련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사고로 지하철 관련 기관 사이의 공조체제 구축, 사고 현장 탐색 및 복구, 훼손된 시신의 개인식별, 유족지원 등 대형참사에 따른 각 과정의 체계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대구광역시에서는 이 참사를 교훈 삼아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을 높이고 안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건립하고 2008년 12월 개관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오전 10시 49분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주식회사 코리아2000 소유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지하 1층 작업장 기계실 인근에서 시작된 불은 벽면과 천장의 우레탄폼을 태우며 빠르게 번졌고 유독가스로 인한 인명피해가 컸다. 화재 진압 뒤 수습된 주검들은 훼손이 커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는 우레탄 발포작업 중 시너로 인한 유증기에 불이 붙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불길과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아 대피시간을 확보해 주는 방화문과 스프링클러, 비상벨 등 소방시설의 자동 작동을 일부러 막아놓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며 냉동창고 소방검사와 관련해 업체와 소방관 간의 수백만 원대의 뇌물을 주고받은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회사 대표 공 아무개씨를 포함해 관련자들에게는 2000만 원의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인 만큼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면서도 "피해 유족과 원만히 합의한 점, 피고인들에게 별다른 범죄전력 없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라고 선처 이유를 밝혔다. 같은 해 12월 이천시 또 다른 물류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세상을 떠났다.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해 온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회원 등 30여명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숨졌고 24명이 다쳤다. 전날인 19일 오전 5시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철연 회원 30여 명이 남일당 상가 건물 옥상을 점거했고 경찰은 경비병력 3개 중대 300여 명을 투입했다. 20일 오전 6시 12분께 경찰은 철거민들에게 물대포 살수를 시작했고 6시 45분 컨테이너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으로 올려보냈다. 7시 20분에 경찰특공대를 태운 두 번째 컨테이너가 올라갔고 건물 3층과 5층에 화재가 발생해 옥상 망루에도 불이 번졌다. 불이 붙은 망루는 무너졌고 8시 30분 소방관들이 옥상에 올라가 망루를 해체했다. 6명의 주검이 무너진 망루 안에서 발견됐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농성자 7명을 기소했다. 2010년 11월 대법원은 농성자 7명에 징역 4~5년을 선고한 원심 결과를 확정했다.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 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안전대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강제 진압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경찰청이 사망한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들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는 국회의원이 됐고, 최근 국민의힘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천안함이 침몰해 해군병 40명이 숨졌고 6명이 실종됐으며 구조활동 과정에 한주호 중위가 순직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했고 조사단은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 발표는 미국과 유럽 연합, 일본 외에도 인도 등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었으며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조사 결과에 비추어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과 공격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희생자들은 국립 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모역에 안치됐다. 인양된 실제 선체는 평택 서해수호관에 전시됐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에서 부산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중 지붕이 붕괴돼 학생 9명을 포함 10명이 숨졌고 100여명이 다쳤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부실시공이 붕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체육관 기둥과 지붕 등에 강도가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했고, 기둥과 콘크리트 연결 부분에도 불법 시공이 이뤄졌으며 설계 또한 건축구조기술사의 검토 없이 임의로 도면을 변경하는 등 총체적 불법 시공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운동시설로 허가를 받고 강당용도 등으로 이용하면서도 다중이용을 위한 사전 점검을 받아야 함에도 법률상 안전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리조트는 허가를 받은 이후 단 한차례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전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오전 8시 49분께 좌현부터 침몰이 시작됐지만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이 반복됐고 구조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엉뚱한 교신으로 인한 초기 대응시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언론의 치명적 오보 등 총제적 부실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인재로 기록된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014년 10월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 화물 과적/ 고박 불량/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이 통과돼 세월호 선조위가 출범했고 4월 11일 세월호가 참사 1091일만에 인양을 마무리했다. 미수습자 수습·수색작업을 통해 9명 중 4명의 유해를 수습했다. 2018년 10월 19일까지 수색작업을 이어갔지만 끝내 5명의 유해가 수습되지 못했다.
전남 장성군 상계면 효사랑 요양병원에서 오전 0시 27분께 화재가 발생해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졌다. 화재는 6분 만에 초기진화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환자들이어서 대피하지 못했고 대부분 병실에 퍼진 유독가스 때문에 사망했다. 사고 조사결과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입원 환자 대부분이 치매 노인이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다. 당시 의료법의 요양병원 야간당직 인력 배치 기준은 환자 200명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이었지만 필수 근무 인력조차 확보하지 않았다. 효사랑병원 자체가 비의료인이 시설을 갖추고 의료인을 고용해 불법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임이 드러났고 618억원의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받은 것이 확인됐다. 그 과정에서 광주시 공무원 박아무개씨 등이 병원 허가를 대가로 뇌물 2000만원 등을 받았다. 사고 4개월 뒤 병원 이사장인 이 아무개씨는 부당하게 챙긴 요양급여 618억원을 물어내고 병원문을 닫은 뒤 구속됐다.
오후 5시 58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유스페이스2 건물 앞 야외광장에서 열린 `제1회 판교 테크노밸리축제' 축하공연 도중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람객들이 1.5m 높이의 환풍구 위로 몰리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람객 27명이 지하 4층 높이 20여m 아래로 추락해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행사 당일 안전요원은 한 명도 없었다. 사고 수사 결과, 환풍구 시공사가 금속창호 공사업 면허도 없는 자재납품업체에 재하도급을 줬고, 이 업체가 도면에 나타난 받침대 개수보다 적은 수의 받침대를 설치하는 등 부실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소방서 소속 소방관 2명은 공연 이틀 전 소방점검표에 `점검했다'라며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 행정안전부는 사고 발생 한 달 뒤 지역축제 참석인원은 순간 최대 관람객 수 3000명에서 1000명으로 기준을 줄이고, 대피 안내 영상물을 공연장에서도 의무적으로 상영하고 아르바이트나 자원봉사자 등 단순 안내요원도 사전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는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병원 1층 응급실 탕비실 천장에서 합선으로 발화가 발생했고 거동이 불편하고 나이 많은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제대로 대피하지 못해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 2010년대 발생한 화재 중 가장 사망자가 나왔다. 해당 병원은 수차례 증축이 이뤄진 낡은 건물로 방화 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필수 의료 인력을 고용하지 않았으며 당직 의료인도 의사와 간호사가 아닌 무허가 대리 진료 의사와 간호조무사를 배치했다. 그뿐 아니라 의료진이 아니면서 의료재단을 인수한 뒤 병원을 개설해 요양급여 400여억 원 가로챈 사무장 병원으로 밝혀졌다. 의료재단 이사장인 손아무개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의료법 위반, 사기 횡령등 등의 혐의로 징역 8년을 받았다.
한국서부발전의 사업장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김용균이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2인 1조가 근무의 원칙이었지만 홀로 일하고 있었고 제대로 된 보호도구 조차 제공하지 않아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시신은 5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고 구조행위 조차 불가능했다. 사고 발생 며칠전 그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이 공개돼 많은 이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한 산업재해 유가족 `다시는'이 함께 여러날을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감행해 산업안전보건법 수정에 나섰다. 2018년 12월 27일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안법 개정안이 이른바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됐다. 2022년 2월 참사 4년만에 나온 1심 선고에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사장을 비롯한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후 1시 30분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공사장 지하 2층에서 용접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가연성 소재인 우레탄폼에 튀어 불길이 치솟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또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화재 당일 평상시보다 2배 가량 많은 67명이 투입된데다 결로 피해를 막고자 대피로를 폐쇄하는 등 현장 곳곳에서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밝혔다. 용접 작업은 방화포와 불꽃·불티 비산 방지를 위한 덮개 설치 등 조처 뒤 2인 1조로 이뤄져야 하지만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고 관리·감독자들은 화재 위험 작업 전 안전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고 재예방 피난 교육도 하지 않는 등 총체적인 안전관리 소홀도 드러났다. 하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시공사 현장소장에게 징역 3년 6월, 시공사 법인은 벌금 3천만원이 선고됐고 물류창고의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하5층, 지상 4층 규모의 SLC 물류센터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물탱크 청소를 위해 준비하던 과정 중 물탱크 온열장치에 연결된 전기히터를 끄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다. 문제는 화재감지기와 화재수신기, 소방설비로 이어지는 연동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하던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에서 5층 건물 해체 공사 중 일어난 붕괴사고. 사고 건물이 도로쪽으로 무너지며 인근 정류장에 정차했던 버스를 덮쳤고 이로인해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현대산업개발, 한솔기업, 실질 계약자까지로 이어진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부실공사가 주요 원인이었다. 옥상부터 철거하겠다는 내용의 해체계획서와 달리 일반 모래둑을 쌓아 건물 중간부터 철거했으며 비산 먼지 관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땅에 물을 뿌리면서 땅이 약해진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사고 조사 과정 중 재개발 철거 관련 부실감리자 선정은 전현직 공무원 청탁 때문인 것이 드러났으며 이에 관여한 혐의로 문흥식 전 518부상자회장이 구속됐다. 또한 관리감독청인 동구청은 공사 위험성을 지적하는 주민들의 민원에 현장 확인 대신 서면 경고로 마무리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오전 5시 20분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불이나 오전 8시 20분께 큰 불길이 잡혔지만 오전 11시 50분꼐 다시 불길이 치솟으며 건물 전체로 번졌다. 쿠팡 직원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경기도 광주소방서 119 구조대장 김동식 소방령이 인명 수색을 위해 건물 지하 2층에 진입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상 4층, 지하 2층 축구장 15개 넓이와 맞먹는 12만7178.58㎡ 에 달하는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하 2층 창고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택배에 쓰이는 종이나 비닐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아 불은 엿새만에 완전 진화됐고 건물은 뼈대만 남았다. 엿새동안 이어진 불로 반경 5~10km에 달하는 이천 지역의 환경 피해가 컸다. 경찰 조사 결과, 센터 방재팀장 등은 불이 난 직후 연기를 감지하고 비상벨이 울리자 6번이나 `복구키'를 눌러 비상벨 작동을 정지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부 스프링쿨러의 작동이 10분 이상 지연됐고 초기 진화에 실패한 불은 건물 전체로 번져 피해를 키웠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과거에도 오작동 사례가 있어 복구키를 눌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쿠팡 법인이나 본사 관련자는 입건 대상에서 제외됐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건설현장에서 201동의 외벽이 무너진 붕괴사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시공, 감리, 하청 등의 복합 과실로 드러났다. 건설진흥법에 따라 현장에 총 6명의 시공 품질 관리자가 선임됐으나 실질적으로 1명이 품질관리 업무를 도맡아 수행했고,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불법 재하도급 정황이 확인됐다. 최고층인 39층과 관련한 무단 구조변경 또한 사고의 원인으로 꼽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사퇴했고 현장소장, 공사부장, 품질관리자 등 3명이 구속되고 대표이사 등 6명이 불구속 송치됐다. 현대산업개발은 공사중인 아파트를 전면 철거한 뒤 재시공하겠다고 발표했다.